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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제자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 준 민변 공익인권 변론센터를 응원합니다! (정승민, 소명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2018/11/06

제자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준 민변 공익인권 변론센터를 응원합니다!

 

정승민 (소명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왜 어느 곳은 지원이 되고 어느 곳은 안 되는 걸까?’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비인가대안학교인 소명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역사 교사입니다. 제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찾게 된 계기와 헌법소원(2016헌마649)을 진행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과정을 가감없이 나누고 싶습니다. 2년전으로 거슬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2016년 처음으로 고3 담임을 맡게되었습니다. 학기초 학생들과 진로·진학 상담을 하였고, 그 중 2명의 학생이 초등교사가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교육대학 입시요강을 살펴보았습니다. 비인가대안학교는 검정고시를 합격해 학력을 인정받습니다.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등한 학력이 있는 자가 지원할 수 있는 전형에만 지원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전국 교육대학 수시모집전형에서는 단 한 곳도 지원자격을 부여하는 전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립대학인 이화여자대학교 초등교육과는 수시모집 전형에서 논술전형으로 지원기회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국립대학인 제주대학교 초등교육과에도 나름의 선발기준을 세워 지원자격을 부여해주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의문점이 생기기기 시작했습니다. ‘왜 어느 곳은 지원이 되고 어느 곳은 안 되는 걸까?’ 입학처에 물어보니 검정고시 출신자들은 학교생활기록부가 없어서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이화여자대학교와 제주대학교에서도 기회를 부여해주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교육대학의 답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의 꿈과 연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관련 내용을 정리해 언론에 문제 제기를 했고 검정고시 출신자들이 수시모집전형에서 지원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는 차별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뉴스에 입학처의 관계자가 학교 생활을 하지 않고 교사가 될 수 있느냐는 비정상적 논리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니 화도 났습니다. 이미 2006년과 2013년에 수시모집에서 지원자격을 폐지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까지 교육대학은 권고안을 나몰라라 하면서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2016429MBC 아침뉴스에 검정고시로 선생님 못 해? 교육대학 수시지원 제한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해 기회조차 주지 않는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출처 : MBC뉴스>

 

그래, 민변에 도움을 요청해보자!’

2017학년도 수시모집 비율은 70%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시기회의 박탈을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비인가대안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검정고시 출신자들 모두가 선발과정에 참여할 수조차 없다는 것은 헌법이 정한 평등의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한 명의 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우연히 법률구조공단에 학생들과 탐방을 갔다가 점심을 먹으며 입시제도의 고민을 나누었더니 헌법소원을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를 했다면 헌법 제11조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봤습니다

 

 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진행할지 막막했습니다. 인터넷에 헌법소원을 검색어로 입력하고 관련 내용을 조사했습니다. 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정보검색으로 헌법소원을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였습니다. 검색을 하던 중 곁가지로 잠시 빠졌습니다. 당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서 영화 <자백>의 스토리펀딩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무죄 과정을 MBC 해직기자인 최승호 PD(MBC사장)3년간 추적해 만든 영화였습니다. 응원 글과 함께 후원했습니다. 영화에서는 간첩조작사건 무죄를 받기위해 활약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장경욱 변호사가 출연배우로 나옵니다. ‘민변에서 한 사람을 위해 국가권력에 대항해 법정 다툼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스토리펀딩은 시리즈로 이어지다보니 민변’, ‘민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갑자기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래, 민변에 도움을 요청해보자!’ 그날 밤 바로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민변 홈페이지에 접속해 공식제보 이메일 주소를 확인하고 자판을 두드리며 교육대학 검정고시 출신 수시모집 전형 지원불가에 대한 문제점을 써 내려갔습니다. 봄에 시작한 일이 어느덧 6월에 접어들었습니다. 6월 중순에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서 헌법소원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왔습니다. 7월 초 법무법인 양재 류광옥 변호사님과 첫 번째 만남 약속이 잡혔습니다. 또 다른 길이 열리기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2016.7.8.() 초등교사가 꿈인 학생 2명과 학교신문 기자와 함께 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에 소속된 류광옥 변호사와 만나 헌법소원의 본격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헌법소원(2016헌마649) _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위헌 확인!

201684일 목요일 오후 2시 종로구 헌법재판소앞에서 초등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두 학생과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와 함께 헌법소원을 진행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자회견 자리에 서보았습니다. 무척 떨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헌법소원으로 국가의 최종판단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20168414:00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헌법소원 심판청구 대리인으로 법무법인 양재를 비롯한 6곳과 8명의 변호사가 함께 해주었다. 우리의 사건은 ‘2016헌마649 서울교육대학교 등 2017학년도 수시모집 입시요강 위헌확인으로 정식 접수되었다.>

 

헌법소원과 관련해 언론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 헌법소원 청구 이유에 대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반대측 입장과 함께 전국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2016823일, 전원재판부에 회부가 결정되어 심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건은 어떻게 된 것일까? 20171228일 목요일 오후 2시 마침내 최종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바로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이 확인된 것입니다. 역사적 판결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필요에서 출발했지만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서 공익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주었기 때문에 얻게 된 결과였습니다

 

 

시민의 삶에 날개를 달아줄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응원합니다.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진행한 두 학생들은 소명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한 명의 학생은 교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교육학과에 진학해 중등교사의 꿈을 꾸고 대학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 한명의 학생은 헌법소원을 진행하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더 멋진 꿈을 꾸며 대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와 함께 진행했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2018년에는 헌법소원의 심판의 결과로 교육대학 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들이 수시전형에서 검정고시 출신자들에게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학생상담을 할 때도 지원이 가능한 대학이냐 아니냐를 파악하기 보다 대학별로 어느 전형으로 지원할지를 상담합니다. 올해부터 검정고시 출신자들이 모든대학 수시전형에 제한없이 지원이 가능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선발과정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기회가 제한없이 열렸다는 것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없었다면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 류광옥 변호사님이 헌법소원 청구의 모든 과정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고 공익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 모든 비용을 무료로 헌법소원을 진행해주었습니다. 제자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2화] 더 날자, 인권기금! 더 높이 더 넓게 날자,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2018/10/19

더 날자, 인권기금! 더 높이 더 넓게 날자,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서른 살 청년 민변과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있어서 너무나 든든합니다!!

 

안진걸(현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상지대 초빙교수/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세계적 시사 주간지 타임은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뽑았습니다. 당시 타임지 표지에는 ‘당신’의 얼굴이 비치는 컴퓨터 모니터와 함께 ‘You’라고 쓰여 있었죠. 적극적인 참여자로 디지털 민주주의를 이끄는 세계의 시민들이 주인공이라는 뜻이죠. 유명 인사를 뽑아온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불특정 다수를 선택한 겁니다. 

 

<2006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YOU>

<2006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YOU">

(출처 : https://namu.wiki/w/%EC%98%AC%ED%95%B4%EC%9D%98%20%EC%9D%B8%EB%AC%BC/2000%EB%85%84%EB%8C%80#s-7)

 

2011년에 다시 한 번 개인이 아닌 다수를, 즉 투쟁하는 민중들을 선택합니다. 이번에는 ‘시위자(THE PROTESTER)’가 뽑힙니다. 그해 세계 각국에서 시위자들의 활동이 가장 눈에 띄었다는 거죠. 중동을 필두로 곳곳에서 독재자를 몰아내자는 시위가 있었고, 미국 월가에서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외친 민중의 힘(occupy wall street)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투쟁하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역사와 사회의 주인으로 우뚝 서고 있는 것입니다.

<2011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THE PROTESTER">

(출처 : https://namu.wiki/w/%EC%98%AC%ED%95%B4%EC%9D%98%20%EC%9D%B8%EB%AC%BC/2010%EB%85%84%EB%8C%80)

 

한국의 시민들도 2016~2017년 촛불시민혁명으로 2017년 독일 에버트 재단이 수여하는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었죠. 세계적인 인권상의 역사에서 특정 개인이나 NGO 및 시민단체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수상자가 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촛불시민혁명은 실로 대단했고, 세계의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민들이 모여서 촛불항쟁을 전개하는 전 과정에서, 즉 촛불시민혁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크고 작은 모든 법률적 이슈들을 총괄하고 실무를 진행한 전문가들의 모임이 있었으니 바로 그곳이 “민변”이었습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실무진 중 하나로서, 또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임으로서 서른 살 민변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민변에서, 꼭 시국 이슈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겪고 있는 다종다양한 사회적 과제들에 대해, 그리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특히 변론을 통한 조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더욱 더 든든하기만 합니다.

소셜펀치 1화에서 나온 것처럼,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사건으로는 160건, 숫자로는 1천명이 넘는 시민들을 위한 공익 소송 및 공익 변론을 진행하고 있고, 지금도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대책 없이, 잘못된 법제도로 쫓겨나는 상가 임차인들을 위한 공익변론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문제처럼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회적·생활적 이슈들을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직접 챙겨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현장검증을 준비중인 궁중족발 변호인단>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임금 노동자이거나 중소 자영업자로 살아가고 있고, 이는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또 많은 청년, 실업자, 소수자, 빈민,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를 함께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수없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양극화, 민생고, 불평등, 불공정, 갑을문제 등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대론 된 민생대책과 복지가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인권과 생존권이 유린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이 작금의 한국 사회입니다. 즉, 민변이,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챙겨야할 시민들과 이슈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고,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시민들이 시민단체들과 민변 공익인권변론세터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민변의 설명과 같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으로 공익 소송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는 공익적인 변론을 받아야 할 약자들과 공익 소송을 통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수많은 이슈가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시민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이제 우리 시민들이 나설 때입니다. 그래서 저도 우리 시민들에게 민변 공익인권변론세터를 열심히 홍보 드리고, 그 후원을 적극 추천(강추!)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이미 아주 작지만 후원금을 보냈고, 앞으로 틈틈이 계속 보낼 예정이고, 이번 소셜펀치에도 동참할 계획이고요. 꼭 큰 후원이 아니어도 좋으니 십시일반 아주 작은 응원과 후원이라도 우리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 보내주십시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수많은 안타까운 시민들에 대한 공익 변론과,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공익 소송으로 아낌없이 보답할 것을 믿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미국 남북 전쟁의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의 전사한 장병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감동적인 연설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19세기의 이 명제가 21세기인 지금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는 “가난한 이의, 가난한 이들에 의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Of the poor, By the poor, For the poor) 민주주의”로 더욱 더 발전해나가야 할 때입니다. 가난한 이들, 서민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어야 더 좋은 민주주의, 더 강한 민주주의, 더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더 나아가 Of the poor, By the poor, For the poor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민변과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의 활동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에서는 소셜펀치 1회에서, “날자! 인권기금, 부디, 시민의 힘으로 인권기금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라고 당부했는데요, 저는 이렇게 호소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더 날자! 인권기금, 더 높이 더 넓게 날자! 민변 공익인권변론세터, 수없이 많은 억울하고 답답한 시민들을 위해-서민들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제1화]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소개합니다! (송상교,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

2018/10/05

시민 여러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를 후원해주세요

 

■ 민변이 왜 변론센터를 만들었냐고요?

민변은 1988년 창립되었습니다. 이제 서른 살이지요. 변호사단체인 민변이 가장 잘하고 잘해야 하는 일은 물론 변론이겠지요. 그래서 창립 후 한국 공익소송의 시작으로 불리는 조영래 변호사님의 망원동 수재사건을 필두로 정말 많은 인권변론·공익소송을 해 왔습니다.

공익인권소송은 참 어렵습니다. 기존에는 둔감하게 여겨졌던 인권 침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이다 보니, 대개는 법원이 우리의 주장을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법관을 설득하기 위해서 일반소송보다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민변이맡게 된 소송이 양적으로 늘어나면서부터 보다 체계적인 변론 지원 활동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민변 변호사들이 몇 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2016년에 공익인권변론센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변론센터가 걸어온 길

변론센터는 지난 2년간 160건이 넘는 소송을 민변변론사건으로 정해 1,000명이 훌쩍 넘는 시민들을 변론했습니다. 보람도 많았죠. 

■ 검정고시 출신자들은 교육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는데, 이에 헌법소원을 제기해서 위헌 결정을 받았고,

■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강제해산의 위법성을 소송을 통해 밝혔고,

■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맞서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지요.

지금도 저희 변론센터의 변론 지원 활동을 통한 인권과 제도 개선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 성소수자의 존엄과 평등을 침해하는 군형법 위헌 헌법소원

■ 노동을 강요받은 자활근로자의 사망에 대해 지자체의 책임을 묻는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

■ 베트남 전쟁에서 학살당한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대한민국의 책임을 묻는 시민평화법정

■ 임대료 상승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세입자를 위한 궁중족발 사건 형사변론까지.

 

변론센터는 변론 외에도 제도 개선 활동 및 연구에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형사 피의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돕는자기변호노트의 활용을 수사기관에 제안하였고,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을 가로막는 현행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으며, 집회의 자유 연구모임・사회권 연구모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변론센터에 시민 후원이 필요한 이유

민변이 변론에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해 왔냐구요? 원래 민변은 지난 30년 간 외부 후원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활동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민이 공익인권소송을 할 때에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십시일반 모아둔 변론기금을 활용해서 변론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시민들이 민변의 변론을 요청하시고 그 뜻을 받들어 소송을 하면서, 회원들이 모은 기금만으로는 더 이상 계속 변론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 시민의 힘으로, “날자, 인권기금!”

세상을 바꾸는 방법으로 소송이 능사는 아니지요. 시간도 돈도 많이 들고요. 그러나 힘없고 돈 없는 시민이 국가나 힘센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통해 세상에 문제를 알리고 의미 있는 판결을 통해 제도를 개선시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입니다. 민변은 그런 가치 있는 싸움에 나서는 시민을 돕고 싶습니다. 민변은 시민의 고통을 듣고 소송을 기획하고, 소송자료를 모으고, 변론 이야기를 알리고, 소송결과에 함께 울고 웃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해보고 싶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변론기금을 모아 그것을 다시 시민을 위해 환원하는 실험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날자, 인권기금으로 지었습니다. 이 공익인권기금은 모두 공익인권 변론기금으로 시민을 위해 사용됩니다.

 

부디, 시민의 힘으로 인권기금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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