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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 사라진 회사, 쫓겨난 사람들_ (1) 레이테크코리아

2019/10/03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이하 [또록])은 성진씨에스, 레이테크코리아, 신영프레시전 등 사업장의 폐업 상황이 여성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 1차 작업을 마무리중입니다. 개별 사업장의 처지와 상황을 다룬 글 한 편, 조합원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인물 서사를 다룬 글 한 편, 이렇게 사업장마다 글 두 편을 준비합니다. 전체 글을 다 보여드리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 두 편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해 선보이는 방식으로 연재를 진행합니다. 사업장의 고유한 상황이나 폐업/해고를 마주한 여성노동자의 경험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글은 이후에 책이나 다른 방식으로 보실수 있을 것입니다.

[또록]의 작업은 느리고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얘기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담아보려고 고민,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결과물은 더딜 테지만, 끝까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 연재는 <누가 내 직장을 옮겼을까?> 소셜펀치 후원함 게시판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세 차례에 나누어 게시합니다. 앞으로 소셜펀치 모금함이 종료되는 1031일까지 성진씨에스, 신영프레시젼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계획입니다.

  

사라진 회사, 쫓겨난 사람들_(1)

레이테크코리아

레이테크코리아(이하 레이테크)는 문구용품 제조업체다. 2018년 레이테크는 포장부서를 외주화했다. 포장부에 근무하던 21명은 영업부로 배치됐다. 포장부서원들은 배치전환도, 외주화도 납득할 수 없었다. 이들은 항의했고, 회사는 올해 4월 포장부 전원을 해고하기에 이른다. 포장부 여성노동자들은 현재 복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최근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여성 노동자에게 해고란?

[해고를 애원하지 않는다] 일부

_ 희정

 

* 여자 해고는 해고도 아니다_

 

세상과 그녀들의 온도 차가 다르다.

 

여성노동자가 해고를 당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남성이 해고당하면 어떡해, 그 집 어떡하지그러거든요. 내가 주위 사람들한테 나 해고당했어얘기를 해도, ‘쉬어’, ‘봉사활동이나 해이렇게 노동 가치를 뜨겁게 생각을 안 해주는 거예요.” 

 

해고는 억울한 일인데, 세상은 억울해 해주지 않는다. 잘리는 일뿐인가. 그녀 자신들이 노동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 뜨거운데, 그녀들 노동을 보는 세상의 태도는 미적지근하다. 반찬값, 학원비 벌이라 부른다. 반찬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몇 개 안 올리면 되는 거니까. 여자 일은 반찬마냥 없어도 되는 일이 된다. 잘려도 이참에 뿐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해고도 운이 좋아야만 당한다. 해고가 되면 실업급여라도 탈 수 있는데, ‘자르지도않는다. 정리해고도, 희망퇴직도 자본금이 어느 정도 있는 회사에서나 벌어지는 일. 제 발로 알아서 나가길 기다린다. 기업은 해고라는 부담조차 지려 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이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 천 원짜리 노동 계산법_

 

당신들 노동은 천 원짜리야.”

 

사장의 말이다.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7천 원을 넘은 해였다.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금액에 닿기는커녕 7분의 1쯤 되는 가치라니. 분회장은 그 말을 듣고 잠을 못 잤다. 밤에 불을 끄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중략)

 

오만한 CEO의 헛소리면 좋겠지만, 문제는 이 말에 나름 수학적 계산이 들어가 있다는 데 있다. 사장은 외주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내부에서 제품 하나를 포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 120원인데 외부에 맡기면 25~35원 정도라며 그동안 무리하게 포장부 고용을 유지해오다가 최근 매출 및 일감이 줄면서 불가피하게 외주화와 전환 배치를 결정했다. (《참여와 혁신》, 이동희 기자, 2018.2.7.)

 

외주화의 정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의문이 든다. 아무리 외주업체라지만 똑같은 일인데 어떻게 작업 비용이 5배나 차이가 날 수 있나. 포장 업무를 어디에 맡기면 이런 절감이 생기나. 부업업체라고 한다. 인형 눈알 하나 붙이는 데 1원이라는, 손 부업말이다.

 

임태수 사장이 말한, 제품 하나 포장하는 데 드는 ‘25은 가내부업 노동자의 임금을 가리킨다. 아니, 중간 알선업체가 떼어가는 수수료를 포함한 금액이다. 가내부업에 맡기면 임대료, 전기세, 4대 보험, 식대가 들지 않는다. 값싸다. 그 모든 비용을 이름 모를 노동자가 스스로 감당하니, 회사는 절약을 한다.

 

저임금, 장시간, 계약직…… 불안정 노동을 대표하는 단어들조차 가질 수 없는 노동이 만연하다. 수치도 통계도 낼 수 없는 음지의 노동. 이제 노동자도 필요 없다. 손만 있으면 된다. 노동 값이 끝 간 데를 모르고 떨어진다. 그러니 레이테크 노동자들이 아무리 꼼꼼하게 일해도 최저임금도 아깝다.

 

10년을 일해온 사람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그 숫자는 현실의 낮은 노동 값에서 나온다. 그 값을 계산하면 당도하는 곳은 모욕이다.

 

 

레이테크코리아 조합원 인터뷰

[세상 어딘가, '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 일부

_ 림보

 

* 드센 게 아니라 생각이 바뀐 것’_

 

노동자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헌법 33조에 떡하니 적혀 있는 권리,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한번 행사해보겠다는 것뿐인데, 사장은 동네 아줌마들 일하게 해준 게 어딘데 감히 노동조합을 만드냐”, “이 아줌마들이 일할 데도 없지, 나나 되니까 써줬지, 당신들이 어디 가서 그런 일을 하겠냐며 호통치기 일쑤였다. 실로 헌법 위의 사장님이다. 아버지 임상용 사장이 그러더니, 노조가 생긴 뒤 회사를 물려받은 아들 임태수가 취임하고는 아예 노조를 없애려는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임태수가 사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합원 나소정(가명) 씨가 그와 한판 붙은 것이다.

 

나소정 조합원이 한번 임태수와 감정적으로 안 좋은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거든요. 나소정 조합원이 이의 제기를 했어요. 그건 맞지 않는다. 임태수가 그때 당신 나가라고, 화를 내면서. 나소정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면서 나갔거든.” 

 

당신이 한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맞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 했다고 사장은 나가라고 했다. 안 나가겠노라고 끝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끝내 나가고 말았지만, 소정 씨는 누가 뭐래도 처음 사장과 싸운 사람이다.

노동조합을 꾸리고 난 후 일궈낸 크고 작은 투쟁의 성취도 많았지만, 고용노동청과 경찰서를 드나들며 싸우다 다치고 온갖 고통을 겪기도 했다. 2018410,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은 임태수 사장의 인권침해, 차별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포장부에서 영업부로 배치전환이 되면서 본사 출근 투쟁을 하는 동안 임태수 사장은 거의 매일 나타나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며 조합원들을 괴롭혔다. 소정 씨는 그때도 사장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월급 가지고 입씨름을 하다가 사장이 흉악하다, 추악하다, 역하다, 같은 인간인지가 의심스럽다, 호러물이라고 제게 쏘아붙이는데 너무 화가 나서 아직도 부들부들 손이 떨린다”(워커스 42, 박다솔‧윤지연기자, 2018.5.2.)고 그 순간을 기억한다.

 

임태수 사장이 조합원들에게 퍼부은 폭언은 지금 당신들이 있을 곳이 여기가 아니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사람이나 물건이나 더러운 것이 되니까. 임태수 사장은 자리를 차지하고 말하고 존재감을 발산하는 여자들에게 드세다고, 더럽다고 모욕하면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라_

 

20154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장 씨는 한 여성 방송인을 싫어한다며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아무튼, 모든 걸 갖췄다라고 했다. 이 말은 결국 페미니즘의 표어가 되고 말았다. 장 씨의 말은 너무도 솔직하고 투명해서 놀라운 것일 뿐, 여성은, 더구나 자기 일이 있고 의견을 가지고 싸우는 여성은 늘 그런 말을 들어왔다. 남편이 벌어준 돈 받아 가며 집 안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며 얌전하게 있어야 하는데, 여자들이 돈만 밝히고 억척스레 일하고, 자꾸 눈에 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말했다. 보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말라고. 남성 중심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이 책을 읽고 새로운 지식을 접하여 사색에 잠기는 것은 물론, 자기 세계를 만들고 목소리를 내는 그 모든 행위를 두려워한다.

 

소정 씨는 스스로 대한민국 평범한 아줌마라고 했다. 남편이 전혀 도와주지 않는 독박육아를 7년 동안 해오면서 두 자녀를 키웠다. 결혼 전에는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7, 레이테크코리아에서 일하기 전에는 식당에서 파트타임으로 2년 넘게 일했다.

 

또 한번은 여기 취업하기 전에 알바를 오전 타임에 애들 유치원 보내놓고 쌀국수 알바했다고 했잖아요. 거기서도 2년 넘게 근무했어요. 10시부터 3시까지 정말 저는 제 일처럼 정말 열심히 했었거든요.”

 

소정 씨가 그만두겠다고 하자 못 들은 거로 하겠다, 왜 그러냐며 붙들던 사장에게 사람 구할 때까지는 일해드리겠다고 말했다. 만류하던 사장이 갑자기 바로 다음 날 사람을 구할 테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문자를 보낸 것이다. 부당해고는 아니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할 말 다 하고 나왔다. 소정 씨 본인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봐도 그이는 잘 싸우는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