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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 사라진 회사, 쫓겨난 사람들_ (3) 신영프레시젼

2019/10/29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의

마지막 연재입니다.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이하 [또록])은 성진씨에스, 레이테크코리아, 신영프레시전 등 사업장의 폐업 상황이 여성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 1차 작업을 마무리중입니다. 개별 사업장의 처지와 상황을 다룬 글 한 편, 조합원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인물 서사를 다룬 글 한 편, 이렇게 사업장마다 글 두 편을 준비합니다. 전체 글을 다 보여드리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 두 편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해 선보이는 방식으로 연재를 진행합니다. 사업장의 고유한 상황이나 폐업/해고를 마주한 여성노동자의 경험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글은 이후에 책이나 다른 방식으로 보실수 있을 것입니다.

[또록]의 작업은 느리고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얘기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담아보려고 고민,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결과물은 더딜 테지만, 끝까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라진 회사쫓겨난 사람들_(3)

신영프레시젼

 

신영프레시젼(이하 신영)은 휴대폰 부품 생산 기업으로, LG전자의 1차 협력업체였다. 신영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손꼽히던 중견기업이었으나 올해 초 돌연 청산폐업을 한다. 해마다 1천 억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했으며 청산 직전 자산은 780억 원이었다. 신영 신창석 회장은 청산 이후에도 신영종합개발 최대 주주로 골프장 등 레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 200여 명 중 45명이 남아 신영프레시젼 본사 건물을 점거하고 싸우다, 지난 9월 보상 합의를 하며 투쟁은 끝이 났다.

 

 

매출 몇 백 억 원의 회사가 문을 닫다

[골프장에 심은 풀 한 포기, 놓인 돌 하나] 일부

_ 희정

 

골프장은 춘천에 있어 서울에서 차를 몰고 가면 왕복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반나절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이들이 골프장에 가는 이유가 있다. 신영종합개발이라는 회사에서 세운 골프장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어쩐지 비슷하다. 그렇다. 최대 주주가 신영프레시젼(이하 신영) 신창석 회장이다.

 

골프장에 도착해, 회장님 만나겠다는 이들을 막아서는 경비와 실랑이 끝에 정문을 통과하면 20분 넘게 올라야 하는 언덕길이 기다린다. 그 끝에 유리로 번쩍이는 골프장 건물이 있다. 또다시 회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면, 돌아오는 것은 관리자의 윽박질. “다 찍어. 영업방해야. 얼굴 다 찍어서 고소해!” 신영에서 일할 때 관리자들에게 듣던 윽박질이 이랬을까.

 

골프장에 오르기 전, 노동조합(금속노조 남부지역지회 신영프레시젼분회) 대표인 이희태 분회장이 한 말이 떠오른다.

 

골프장에 심어진 풀 한 포기, 놓인 돌 하나. 신영 노동자들 땀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신영종합개발(이하 개발사) 초기 자금은 신영에서 나왔다. 0원에 가까운 가치의 개발사 주식을 신영 이사회는 1주당 100만 원에 총 400주를 매입했다. 투자할 가치는 없었지만 투자해야 하는 이유는 있었다. 신영종합개발과 신영프레시젼 이사회 구성원이 묘하게 겹쳤다. 그렇게 신영이 청산할 때까지 개발사로 흘러간 돈은 447억 원. 그 돈을 만들기 위해 신영의 기계는 24시간 돌아갔다. 아니다. 오히려 기계는 점점 느려졌다. 설비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비에 투자해야 할 돈이 골프장으로 가서 산을 깎는 데 쓰였다.

 

골프장 짓고 나서는 기계에 투자를 안 하니까, 기계가 노후돼서 가스가 차니까 불량이 많이 나요. 그러니까 엘지 협력업체 등수도 떨어지더라고요.”

 

그이들은 세상이 모른 척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엘지(와 삼성)는 나라의 근간을 떠받치는 굴지의 기업이라 건드릴 수 없어 모른 척한다. 그래서 원청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투기성 사업을 일삼는 협력업체-중견기업도 모른 척한다. 중소기업은 국력이라며 이들의 가족경영 행태를 견제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들은 신창석 회장이 아니라, 청산의 이유를 찾아 골프장으로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명확한 사적 소유 개념은, 이들을 불법 침입자 정도로 만들어놓는다.

 

(중략)

 

골프장 본관으로 가는 길에 그이들은 풀숲에 떨어진 골프공을 자꾸 주웠다. 관리자들이 그런 모습을 볼까 싶어 만류하니 흙 묻은 자그마한 공을 손에 쥐고 까르르 웃는다.

신기하잖아. 우리가 언제 골프공 구경이나 해보겠어.”

 

골프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뉴스건 드라마건 브라운관에 비친 삶은 브라운관 속 이야기일 뿐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소박한 인생이라 부를까. 일만 했다. 20초마다 나오는 부품을 찍고 또 찍었다. 회사가 있어야 나도 있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었지만 때론 회장님 건강까지 염려했다. 이곳에서 오래 일하고 오래 돈 벌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가 사라졌다. 회장님의 골프장도, 회장 일가가 산다는, 한강이 보이는 고급 자택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오직 회사만 사라졌다. 문을 닫은 해, 신영의 매출액은 800억 원. 그 직전 순이익은 20억 원이었다. 매출 몇 백 억 원의 회사가 문을 닫다니. 일하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진정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토록 간단한 손쉬움이었다. 수백 명의 밥줄이 싹둑 잘리는 일이다. 그 일은 너무 쉽게 일어났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신영프레시젼 조합원 인터뷰

[정년퇴직 앞두고 청산폐업, 날벼락] 일부

_ 시야

 

낮은 목소리, 차분한 손동작, 느릿하지만 안정감 있게 자리를 지키는 은숙(가명) .

신영 건물 농성장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책장 너머 책상에 한결같이 앉아 있는 은숙 씨를 만날 수 있다. 잘 정돈된 탁자 위 커피포트에 물이 끓고 있었다. 낯선 공간을 찾은 어색한 연대자인 나에게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고, 따뜻한 커피를 내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내가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의 팀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은숙 씨는 묵직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나를 바라보는, 아니 또록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애정이 느껴지는데, 이 관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인물 르포를 준비하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저는 이상하게 낙서라고 해야 하나? 쓰는 걸 좋아라 했어요. 부천에서 애기 낳고 거기서 십 년을 살았어요. 벼룩시장에 투고도 하고, 신문에 나서 상품권을 받은 적도 있었고요. 글을 쓰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야학 졸업한 친구들끼리 소식지를 내고, 돌아가면서 하긴 했는데, 지금이야 뭐 컴퓨터가 있지만, 옛날에는 수기로 써서 보내주고, 우리 모임 하는 친구들 외에도 관심 있는 친구들한테 주소 받아서 소식지를 보내주기도 했었어요.”

 

* 하청에서 하청으로 내려가는 시간_

취업 정보 일간지에는 용역업체에서 낸 구인광고가 점점 늘어났다. 은숙 씨도 용역업체를 통해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주로 하는 일은 핸드폰 코팅 검사였다. 익숙한 공정이라 일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용역업체를 통해서 들어간 현장에선 틈만 나면 정숙 씨의 고유한 업무인 검사 외에 생산 라인으로 투입하려 했고, 은숙 씨는 자신의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현장을 박차고 나오고 들어가길 반복했다.

용역업체는 알선한 업체에서 받은 4대 보험료를 제때 납부하지 않아 말썽을 일으켰고, 정규직 노동자 특히 관리자의 갑질에 시달려 오래 일할 수 없었던 은숙 씨는 고용과 이직을 반복하면서 어느새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공장에 취업하려면 그가 가진 경력과 능력보다는 여전히 외모가 우선이었다.

 

* 행운이라 믿었던 정년 연장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다_

은숙 씨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불쑥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노조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회사에서 일해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잠을 못 자고 밤을 새워서라도 맞춰야 할 물량이 있다면 기꺼이 해내고야 마는 성미였다. 그녀의 말대로 열나게일하면서도, 임금이 적다거나 근로조건이 열악하다거나 환경이 나쁘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법이 없었고, 신영에서 신아CNC로 옮기고도 불평 한마디 늘어놓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고는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녀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였을까?

일자리가 없잖아요. 딴 데 갈 데가 없잖아요. 일에 겁을 내지 않는데, 제가 체격이 있으니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일을 안 시켜주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