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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글 <참 좋은 당신, 서울인권영화제에 드리는 편지>

2012/05/24

제17회 서울인권영화제_축하의 말

참 좋은 당신, 서울인권영화제에 드리는 편지

언제부턴가 이맘때면, 반가운 편지를 받아들고 즐거워집니다. 5월이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초대장,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 덕분입니다. 어느덧 절반이 지나가는 2012년에는 5월 25일부터 나흘 동안 청계광장에서 열릴 제17회 서울인권영화제. 올해로 열일곱 살을 맞이한다니 벌써 그렇게 됐나 어쩐지 대견하고, 그렇게 자라도록 별로 보탠 것도 없구나 하는 마음에 잠시나마 얄팍한 반성도 하게 되네요. 그래서 영화제를 위한 짧은 글을 써 달라는 청탁에 덜컥 그러마하고는,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하나 밤새 썼다 지웠다 하는, 세상에서 제일 쓰기 어려운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입니다.

돌아보면 참 오래된 인연입니다. 오래 함께한 친구들이 그러하듯, 어떻게 만나 친해졌는지는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옛 사진첩을 뒤지듯 기억 속을 뒤져 보니, 1996년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늦가을 대학가에서 열리곤 했던 서울인권영화제의 어린 날이 떠오릅니다. 애초부터 사전심의와 검열을 거부하면서 개막 행사장 봉쇄, 총감독 서준식 선생님의 구속 등등의 수난과 탄압을 겪어야 했던 시절 말입니다. 그때 이미 거리 상영에도 나섰던 영화제가 학교나 거리가 아닌 상영관으로 들어가기까지는 5년이란 시간이 걸렸었지요.

그렇게 ‘표현의 자유’라는 말뜻을 제대로 알리며 서울인권영화제가 관객들에게 보여줬던 많은 영화들도 떠오릅니다. 소위 ‘이적표현물’로 규정됐던 제주 4.3 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 <레드헌트>, 칠레 민중연합정권에 대한 강렬한 보고서 <칠레전투>, 인도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다룬 <소똥> 등 일일이 거론하긴 어렵지만, 모두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을 꾸게 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 식량과 의약품 부족으로 죽어가는 이라크 사람들에 대한 인권영화제 상영작 <바그다드의 비가>의 사예드 카도 감독을 만나 인터뷰 내내 울컥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던 사적인 기억도 떠오르네요. 사람은 대체 무엇으로 사는가, 왜 누군가를 차별하고 탄압하게 되는가, 정말 어찌 살아야 사람다운 것인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져 슬쩍 잊고도 싶은 고민들을 되새기게 하는 영화들이 솔직히 때론 버겁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세상에 사람으로 살다’라니요. 열일곱 번째 서울인권영화제의 개막에 축하의 말 한 마디 보태고 싶은 마음에 두서없이 쓰는데,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초대글이 다시 가슴에 콕 와 박힙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세상일지라도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내는, 그 모두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구요. 그 박수, 뜨겁고 진한 감사의 마음을 얹어 영화제에도 보내고 싶습니다. 살아갈 터전을, 일할 권리를 위협하는 폭력에 맞서는 사람들, 비정규직,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이 다름 아닌 나와 이웃임을 기억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부족한 말주변에 이런 편지를 쓰게 돼 참 쑥스럽기 짝이 없습니다만, 기왕 판을 벌인 김에 두 편의 시를 빌려 불쑥 고백도 해버리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구처럼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 같은, 김용택 시인의 시구처럼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를 독촉하는 세상 안에 헤매다 정작 ‘무엇을 위해’를 잊기 십상일 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라는 한결같은 조언을 들려주는 우직한 친구로 곁을 지켜 줘서 더없이 고맙고 힘이 납니다. 다시 거리로 나온 지도 5년째, 거꾸로 도는 인권의 시계를 바로 돌리고자 올해도 힘차게 내딛는 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청계광장에서 함께하겠습니다.

황혜림(전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