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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대학입시거부 공동선언문 발표! "멈춰서자,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자"

2018/11/19

 2018 대학입시거부 공동선언문

"멈춰서자,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자" 

 우리 대학입시거부선언자는 여기 이곳에서 함께 멈춰 서 있습니다. 우리는 여태껏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등을 떠밀었던 경주를 그만두기 위해 멈췄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뛰어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우리는 경쟁에 떠밀리기를 멈춥니다. 쫓기듯 달려온 삶에 안녕을 고합니다. 하지만 그저 거기에 멈춰 있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경쟁에 내몰리고 불안에 쫓기는 삶 그 이상을 상상하고 만들어 가기 위해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합니다.

 

 오늘의 대학입시거부는 제도권 교육에 대한 항의 뿐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멈춰 서서, 어떻게 다양한 삶을 상상하고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지 의논하자는 목소리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가리켜 멈춰 버렸다고, 뒤처졌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멈춘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여겨집니다. 잘 살기 위해서, 아니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멈추지 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합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를 위해 숨 가쁘게 경쟁하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뒤처지면 도태된다는 협박 속에서 달리는 동안, 우리는 남들보다 빨리 달리는 것 말고 다른 것은 고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경쟁 사회의 부품으로 사용되고 소모되느라 멈출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는 삶을 손쉽게 부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 이기는 것 바깥의 고민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인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가치 있는 삶의 요소는 무엇인지. 우리는 이러한 고민들을 되찾아 오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멈추는 이유입니다.

 

 현재 학생들의 등을 떠미는 것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과잉 학습과 ‘학원 뺑뺑이’로 상징되는 노골적인 입시 압박만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편견과 배제, 대학 가지 않은 삶에 대한 정책 부재, 노동환경에서의 차별 등 여러 형태를 띱니다. 어떤 진로를 택하든 학력·학벌의 줄 세우기와 차별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이제는 ‘창의성’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과의 무한 경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교육제도 속에서도 ‘그래도 일단 대학은 가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 의해 대학이 강요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을지, 사회적 편견 때문에 무시당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지 두려워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바로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생존하기 위해 멈추지 말고 경쟁하라는 논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은 교육정책에 대한 항의 이상의, 다양한 이유와 결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학벌주의에 거부감을 느껴서, 내 존재가 아닌 대학으로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싫어서, 입시 경쟁이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이라서, 떠밀리듯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 등. 오늘 모인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경험을 해왔지만, 대학입시라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는 마음으로 한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이제는 사회가 강요하는 대로 경쟁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바라지도 않은 트로피를 위해 곁에 있는 사람과 싸워야 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제는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어서, 경쟁과 차별의 논리를 넘어서는 대학에 대해, 교육에 대해, 우리 삶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무엇이 올바르고 좋은 사회인지 그러한 고민들을 되찾아 오고 싶습니다. 하나씩 천천히 생각하고,사회구성원이 이러한 고민을 함께하도록 할 때, 우리는 불안과 강요로 작동해 온 경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다채로운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민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시작입니다. 고민의 전환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이 우리의 삶을 당장 바꾸는 것은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닿고 새로운 고민과 상상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상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소수만이 이길 수 있는 경쟁에서 모두가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믿게 하는 거짓된 신화를 깨트린 후의 세상이 어떨지 상상해봅시다. 동시에 누군가 이기고 지는 것은 왜 당연하고 올바르지 않은지, 패자가 겪게 되는 부당한 대우들이 왜 잘못됐는지 고찰해봅시다. 교육이 입시와 취업에 갇히지 않고, 생존에 대한 불안 없이 공부할 권리가 모두에게 자유로이 보장된다면, 대학은 진정한 선택이 되고 교육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요? ‘성공’은 남보다 더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평등하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숨이 막히도록 달려야만 하는 이 경주에 지쳐 고단한 마음을 이끌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의욕을 갖는 일도, 타인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열어 소통하는 것도 생존 경쟁 속에서는 어려워져만 갑니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 차가운 좌절감은 좀 더 열심히 뛰라는 신호가 아닙니다.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함께 멈추어 빼앗긴 고민을 되찾고, 새로운 고민을 시작합시다.

 

2018년 11월 15일

2018 대학입시거부선언자

( 곽라윤, 김나연, 김정래, 성윤서, 손지영, 신수빈, 신화림, 이수경, 이알, 이효빈, 임재원, 최기현, 최민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