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액 9,125,000원 중 24%
  • 2,2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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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 명 후원
  • 이 후원함은 2014-12-31에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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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시작된 쓰라린 10년의 싸움, 이 겨울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한 번 곡기를 끊은 코오롱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승리를 위해 '다다익선 응원현수막'으로 연대해주세요!

후원이 마감되었어요. 그 결과..

"당신의 10년, 안녕하셨나요?" 코오롱투쟁을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뒤늦은 감사를 전합니다!

지난해 연말,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의 10년 투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랜 투쟁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로 고맙습니다!

집중투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선전담당자 역시 너무 바빠 제대로 진행상황을 알려드리지 못했네요. 그리고 사업결과 보고도 너무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소셜펀치 시스템을 잘 몰라서 후원금 관련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 사업결과 보고를 하려고 기다리다보니 점점 늦어지고, 마침내 지난 3월 3일에 모든 후원금의 송금이 완료되어 이제야 감사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2005년 2월 21일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78명이 정리해고된 이후, 그중 50명이 코오롱정투위를 구성하고 10년 동안 투쟁을 해왔습니다(집중투쟁이 진행된 시점에는 9명의 생계팀을 포함해 12명이 남았습니다). 특히 2012년 5월 11일부터는 코오롱 본사가 있는 과천에서 '끝장투쟁'으로 상경농성을 진행했고, 과정에서 코오롱스포츠 불매투쟁 등으로 조금은 이슈가 되었지만 오랜 싸움으로 주체들도 조금은 지치고 사회적 연대 또한 크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노동자였던 코오롱정투위가 10년이나 싸우며 '최장기 정리해고 사업장'으로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바로 연대였습니다. 지난해 연말, 투쟁 10년을 넘길 수 없다는 주체의 결의와 과천시민들의 조건 없는 공감과 연대로 집중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1월 2일 과천에서의 후원주점을 기점으로 코오롱 정리해고 해결을 바라는 과천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이웅열 회장 면담 요청과 일인시위·시민선전전·시의회 및 시장 면담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11월 5일부터 최일배 코오롱정투위원장과 박선봉 코오롱공대위 대표가 단식을 시작했고, 최일배 위원장은 단식 40일째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후 42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12월 17일부터는 최일배 위원장의 뒤를 이어 과천시민 릴레이단식과 sns 상에서 응답하라 코오롱 챌린지’ 등을 진행하며 투쟁의 불씨를 이어갔습니다.

12월 2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이후 코오롱 사측과의 교섭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사측이 제안한 안을 코오롱정투위가 받아들여 12월 29일 코오롱과 정투위 양측의 입장 발표로 투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비록 정리해고가 철회되고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방안은 아니었지만... 10년을 투쟁하는 동안 코오롱정투위 노동자들을 향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이다'라며 외면하기만 했던 코오롱 사측의 태도를 생각하면 교섭과 정리 자체가 놀라운 일이기도 했습니다. 

 

응원현수막 모으기를 시작하며 애초에 목표한 것은 코오롱정투위 노동자들이 투쟁한 10년을 상징하는 3,650개의 현수막을 모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셜펀치로는 그 절반인 1,825개로 한 장에 5,000원씩, 9,125,000원을 목표로 했었습니다. 너무 큰 목표였는지 아쉽게도 근접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분 한 분 마음을 담아 보내주신 소중한 응원이 코오롱정투위 노동자들이 마지막 투쟁을 이어가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소셜펀치 후원을 통해서는 2,201,500원이 모금되었습니다. 모금을 통해 다른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자들의 마음을 담은 응원현수막을 제작하는 것이었고요. 응원메시지를 적어주신 경우 그대로, 적지 않으신 경우 임의로 응원문구를 정해 가로 50cm 세로 70cm의 응원현수막을 1장에 5,000원으로 제작해 코오롱정투위의 농성장과 코오롱 본사 주변에 게시했습니다. 

▶ 총 90분이 440.3장의 응원현수막에 해당하는 2,201,500원을 후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10년은 안녕하셨나요?' 후원함의 후원금 사용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응원현수막 5,000원 x 440 = 2,200,000원> 그리고 나머지 1,500원은 금액이 애매해서 진행하며 제하지 않은 수수료에 갈음했습니다. 

▶ 응원현수막으로 후원에 함께해주신 분들께 일일이 메일을 드리지는 못하였고, 대신 코오롱공대위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및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응원현수막 시안파일을 올리는 방식으로 알리고 감사를 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난 연말 코오롱정투위 투쟁이 마무리되면서 홈페이지와 sns 계정들은 비활성화 조치를 하였습니다. 미흡하지만, 코오롱정투위 농성장과 과천 코오롱본사 주변에 게시된 응원현수막 사진을 아래에 몇 장 첨부합니다.

 

 

* 마지막으로 코오롱공대위 박선봉 대표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월호에 기고한 코오롱의 마지막 투쟁과 관련한 글을 덧붙입니다. 꼭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 참 고맙습니다!

 

마침내 마무리된 코오롱 정리해고 10년 투쟁 / 박선봉(코오롱공대위 대표)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원직복직 쟁취 투쟁이 마침내 마무리됐다. 2005년 2월 21일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코오롱 정투위)’가 만들어지고 투쟁을 시작한지 자그마치 10년만이다막막하기만 하던 투쟁앞이 보이지 않던 투쟁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투쟁그대로 일상이 되고 삶이 돼버린 투쟁그 자체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이던 투쟁이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급작스럽게 끝난 것이다. 

2012년 5월 11일 끝장투쟁을 선언하고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두 번째로 천막을 친 코오롱 정투위 동지들, 8년 동안 정리해고 철회원직복직 쟁취를 위해 투쟁해온 그 동지들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지역의 노동단체와 진보정당들그리고 과천시민들과 함께 정리해고 철회‧원직복직 쟁취를 위한 코오롱 투쟁 공동대책위원회(약칭 코오롱 공대위)’를 2012년 7월에 결성했다첫 번째 회의를 하는데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됐는지아니면 나의 넉넉한 인품 때문인지아니면 민주노총이라는 후광 때문인지코오롱 공대위 소집권자가 되고 말았다 

코오롱 투쟁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2004년 8월에 임단협을 마무리하면서 구조조정은 하지 않는다고 사측과 합의를 했었다그런데 사측은 현장이 무너진 게 보이니까 11월부터 슬슬 구조조정 이야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2005년 2월 1일에 어처구니가 없게도 노동조합은 509명을 구조조정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2월 17일에 정리해고 통지서가 발송됐다이에 분노한 50명이 모여서 정리해고일인 2월 21일에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코오롱 정투위)’를 구성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1년을 싸우면서 해를 넘기는데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투위 내부에 불안과 조급증이 생겼다흔들리기도 하고그래서 최일배 위원장이 구미시청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단식 17일째에 세 동지가 공장 안 송전탑에 올라갔다. 2006년 3월초에는 과천 본사 로비를 점거하기도 했다그래도 회사는 끔쩍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생각한 게 이웅렬 회장 집이었다회장하고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장 집으로 몰려갔다마침 공사를 하고 있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들어가서도 회장은 만나지도 못하고 모조리 연행이 되고최일배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구속이 되고 말았다그 뒤에도 청와대 앞 고공시위삼보일배 등 안 해본 투쟁이 없었다. 

코오롱 정투위 동지들이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나서부터 자연스럽게 지원문제가 논의됐다지역에 있는 노동단체와 진보정당 등에 지원대책위 구성을 제안하는 제안문을 보냈다지금은 노동당으로 이름이 바뀐 진보신당역시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로 이름이 바뀐 사노위소통과 공감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과천지역 시민사회단체전해투기아해복투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이 응답을 했다마침내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밤 9시에 천막농성장에서 역사적인 코오롱 공대위 첫 회의가 시작됐다. 

코오롱 공대위가 만들어 지긴 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이름을 걸긴 했으나 실제 집행력을 낼 수 있는 단위는 많지 않았다격주로 이어지는 회의에도 많아야 7개 단위가 회의에 참석을 했을 뿐이다그런 조건에서 많은 인력이 필요한 위력적인 집회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실천 가능한집행이 가능한 일부터 하기로 했다우선 매주 화요일 문화제를 단위별로 책임지고 돌아가면서 진행을 하기로 했다문화제가 끝난 후에 격주로 공대위 회의도 정례화 했다민주노총과 화섬연맹의 힘을 빌려 집중 집회 일정도 잡고기자회견이나 성명서 등도 발표했다. 

2013년부터 코오롱스포츠 불매운동을 전면화했다사측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자본에 타격이 되어야 하는데다양한 투쟁 전술이 있겠지만 당시 조건에서 강력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았다그래서 불매 투쟁을 시작하게 됐다아웃도어 제품시장이 팽창하고코오롱스포츠가 공격적 마케팅을 하면서 매출이 계속 신장되고 있는 것도 고려를 해서 판단한 것이다. 

주요 고객은 등산객이니까 산에 가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불매 등반을 조직했고그게 굉장히 호응이 컸고 반응도 좋았다. SNS 중심으로 인증샷들도 많이 올라오고 알려지기도 하면서코오롱 사측에도 부담이 됐었던 것 같다그래서 그들이 들고 나온 것이 전국에 있는 주요 102개 산에 불매운동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자기들의 사유지도 아닌 누구나 다니는 산에 가처분을 신청한 것은 보통 사람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엽기 코미디이다당연히 가처분은 기각됐지만 코오롱 자본이 불매 투쟁에 민감함을 확인 시켜준 사건이었다. 

불매 투쟁이 코오롱 자본에게 타격을 주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교섭의 장으로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했다이제 해가 바뀌면 ‘10’이라는 숫자가 바뀌는 상황에서 ‘11’이라는 숫자를 받아들이고 또 다시 10아니면 그 이상이 될 지도 모르는 투쟁을 이어나가야한다는 것은 주체들과 연대단위들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무슨 수를 쓰던 2014년 안에 투쟁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 주체들을 내몰았다. 2014년 10월 27코오롱 정투위는 전체회의를 통해 2014년 안에 코오롱 정리해고 철회 및 원직복직 투쟁을 매듭짓기 위해 끝장투쟁을 결의했다. 

과천시민들도 코오롱 투쟁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간담회를 진행했고거기서 투쟁 전술로 단식투쟁이 논의됐다과천시민들이 코오롱 자본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모든 노력을 다 한다는 전제조건으로코오롱 공대위도 동의를 했다왜냐하면 사실은 별로 쓸 수 있는 전술이 없었기 때문이다현장투쟁의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 생계팀 9명을 제외한 투쟁팀 3명이 할 수 있는 투쟁은 많지 않았다아니어쩌면 선도적인 투쟁만이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었다요즘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고공농성을 하려해도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코오롱 본사 근처에 마땅히 올라갈 만한 곳도 없고설령 올라간다고 해도 밑에서 지켜주고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도 되지 않았다. 

2014년 11월 5일 최일배 위원장과 박선봉 코오롱 공대위 대표가 끝장 단식투쟁에 돌입을 했고과천지역시민대책위와 코오롱 공대위는 코오롱 사측이 해고자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항의행동과 거리선전전집회 등을 집중적으로 전개했다그런 투쟁의 성과가 마침내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4년 11월 26사측이 교섭의사를 밝혀와 대화가 시작됐다이후 10여 차례의 실무교섭을 진행하여 12월 22일에 이르러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이튿날 코오롱 정투위는 긴급총회를 열어 사측이 제시한 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12월 28일 투쟁을 마무리하게 됐다. 

누가 뭐래도 코오롱 투쟁은 최일배 위원장과 김혜란 동지의 헌신적이고끈질긴초인적인 투쟁의 결과이다. 2012년 5월 과천 본사 앞에 천막을 칠 때만 해도 16명이었던 정투위 성원이 한 명 두 명 줄어들더니 끝내 12명으로 줄어들었다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투쟁팀에 남아 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어쩔 수 없이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서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장고훈 동지가 2013년 5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사고까지 발생을 했다그 모든 슬픔과 고통을 가슴으로 삭여온 동지들이다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세월수십 년을 코오롱에서 일하며 청춘을 바쳤는데 코오롱과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코오롱 자본에 맞선 그들의 투쟁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오롱 공대위 소속단체 성원들의 꾸준한 연대공대위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몇 몇 성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봉사도 반드시 평가돼야 한다그리고 공투단을 비롯한 투쟁사업장 동지들의 지지와 연대공동투쟁도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SNS를 통한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투쟁 확산을 위한 노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코오롱 정투위 동지들이 2년 6개월을 낯선 도시사고무친의 고장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단연코 과천시민들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그들은 고립무원인 이들을 가족친지처럼 대했다밥을 해다 나르고반찬을 해가지고 오고이들을 돕기 위한 조직을 꾸리고코오롱 사측에 항의를 하고집회를 만들고문화제를 조직하고토론회를 열고후원주점을 내는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거의 매일 천막에 들려 이것저것 챙겨주고제안도 하고격려도 하고충고를 아끼지 않았다시민들이 각자의 능력과 조건에 맞게 성심성의껏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연대를 실천했다그들은 과히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이제 코오롱 과천 본사 앞에 3년 가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천막은 사라졌다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착각마저 들게 하던항상 가면 그 자리에 있을 것 만 같은그 천막을 사수하고 있던 두 동지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천막은 사라지고 투쟁은 끝이 났다하지만 그 투쟁에 연대하고 지지했던그 투쟁이 승리하기를 온 마음으로 소망하고 빌었던 모든 사람들의 뜻과 정신은 아직도 우리들 모두의 가슴속에 영원히 뚜렷한 자국으로은은한 불길로 살아남아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 불길이 다른 투쟁사업장으로 옮아 갈 것임을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 동안 코오롱 투쟁에 같이 했던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

이 후원함에 대하여

This moment with you.
당신의 10년, 안녕하셨나요?

2005년 2월 21일 정리해고 이후 한결같이 투쟁해 온 코오롱 노동자들,
뼈 빠지게 일하다 쫓겨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자로 평생을 살아갈 수 없다!”며 싸워온 세월이 10년입니다. 고공농성, 노숙, 단식, 로비점거, 삼보일배, 불매운동 심지어 담판을 위해 회장집으로 찾아가기까지 안 해 본 것 없이 투쟁의 세월을 보냈지만 코오롱은 '아무 상관없는,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외면할 뿐입니다.

쓰라린 10년의 싸움, 이 겨울도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한 번 곡기를 끊습니다.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정리해고, 그 아득한 낙인이 더 많은 돈과 일만 하는 노동자들을 원하는 기업의 탐욕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외면하는 순간, 나의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 역시 우리는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부실경영이 부른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정리해고, 이웅열 회장이 해결해야 합니다.
2014년 2월 18일, 우리는 경주 마우나리조트 참사에 대해 사과하는 이웅열 회장을 보았습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새벽같이 현장에 내려간 대주주의 책임감으로 정리해고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합니다. 여전히 생각이 없다면, 우리들의 마음을 힘으로 모아내 더 이상은 용인할 수 없음을 보여줍시다. 

 

코오롱 노동자들의 10년 투쟁에 연대하는

'다다익선 응원현수막 3,650!' 

10년 투쟁에 함께하는 3,650개의 마음을 모아주세요!

- 최일배 위원장의 단식농성을 시작하는 11월 5일부터, 보내주시는 응원의 마음을 현수막에 담아 과천 코오롱 본사를 에워쌉니다.
- 코오롱 투쟁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후원자 한마디에 꼭 적어주세요.
- 응원현수막은 1장에 5,000원이며, 다다익선입니다. 
- 가족, 지인, 친구들에게도 알려주시고, 동참을 권해주세요.
- 3,650개의 절반을 소셜펀치 후원으로 모으고자 합니다. 

. 연대계좌 국민은행 369402-01-064225 예금주: 박선봉
. 투쟁소식 twitter @kolonout / facebook https://www.facebook.com/antikolon
. 010-2312-3419 / kolonout@gmail.com 문의와 직접 신청도 환영합니다.

 

* 코오롱 투쟁영상 모음 링크입니다~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C%BD%94%EC%98%A4%EB%A1%B1+%ED%88%AC%EC%9F%81

 

농성장에 게시된 응원현수막

kolon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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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1일 정리해고 이후, 쓰라린 10년의 싸움을 이어온 코오롱 노동자들이 이 겨울도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한 번 곡기를 끊습니다.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정리해고, 기업의 탐욕이 부른 그 아득한 낙인을 거둘 사회적 연대로 이 싸움 꼭 승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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